“선수 생명권이 우선”…선수협, 고온 대응 위한 ‘WBGT 기준’ 도입 촉구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가 여름철 극심한 폭염으로부터 선수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대응 체계 마련에 나섰다.
선수협은 지난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 아시아/오세아니아 총회에 참석해, ‘기후변화와 스포츠 안전’을 주제로 열린 첫 세션에서 고온 대응 기준 마련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선수협 김훈기 사무총장은 “WBGT(습구흑구온도)가 35도를 넘으면 이미 응급 상황”이라며 “33도부터는 사전 경고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경기력보다 우선 보호돼야 할 것은 선수들의 생명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WBGT 기준 도입 촉구…“실제 고온 사례, 보고보다 많다”
WBGT는 단순 기온이 아니라 습도, 태양 복사열, 바람 등을 모두 고려한 고온 스트레스 지표로, 세계 스포츠계가 점차 주목하고 있는 기준이다.
김 사무총장은 “지난해 여름 기준으로 공식적으로 보고된 WBGT 35도 이상 훈련 및 경기는 단 2건뿐이었지만, 실제로는 6월부터 9월 사이 최소 13건 이상의 미신고 사례가 더 존재했을 것”이라며, 현재 국내 스포츠 현장에서 고온에 대한 보고 체계나 데이터 수집이 전무한 실정임을 지적했다.
특히 해외 원정이나 지역 간 기후 차가 큰 이동, 경기 전 훈련 과정, 그리고 여름에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이 기온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는 대표적인 고위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컨디셔닝 실패는 단순히 경기력 저하가 아니라 생명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야간경기 확대·냉각 장비 상시 비치도 대안
김 사무총장은 “선수들이 더위를 피해 야간에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K리그뿐 아니라 아마추어 전국대회까지도 일정 조정을 고려해야 한다”며 “천막과 선풍기로는 더위를 피할 수 없다. 냉각 장비가 경기장에 상시 구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FIFPRO는 이날 세미나에서 경기 조직위와 의료진, 선수들이 각각 고온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지침도 제시했다.
조직위는 경기 전·후 WBGT 측정 및 실시간 정보 제공, 얼음·그늘 공간·수분 보급 등의 환경 조성을, 선수들은 열 적응 훈련 및 수분 섭취 전략 마련을, 의료진은 열사병 조기 인식 및 교육훈련 강화를 권고했다. 특히 현장에서는 ‘먼저 냉각, 그다음 이송’이라는 국제 의료 원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호주 A-리그는 이미 WBGT 기준 적용 중…“그러나 여전히 부족”
이날 발표에서는 호주 A-리그 사례도 소개됐다. A-리그는 FIFA보다 더 보수적인 WBGT 기준을 채택해, 일정 기준 이상 고온이 감지될 경우 쿨링 브레이크나 경기 연기가 더 쉽게 시행된다.
하지만 김 사무총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온으로 인한 건강 문제나 경기력 저하가 있다는 피드백이 선수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며, “각국 리그는 단순히 기준 도입에 그치지 않고, 선수 피드백을 적극 반영한 기준의 지속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아마추어 선수도 보호 대상…제도적 뒷받침 시급”
김 총장은 마지막으로 “무더위는 프로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곧 열릴 초·중·고 및 대학 전국대회 역시 더위와의 싸움이 될 것이다. 인조잔디 위 햇볕은 더 뜨겁다”며, “이들은 미래의 K리그와 WK리그를 책임질 선수들인 만큼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협은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고온 대응 정책 마련을 위해 K리그, WK리그 관계자들과 협의를 본격화할 것”이라며 제도적 뒷받침 마련에 힘쓸 것을 다짐했다.